전세보증금은 왜 ‘내 돈’ 인데 내 마음대로 못 받을까

전세계약이 끝날 때 임차인이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순간은 “내 돈을 돌려달라”는 당연한 요구에 임대인이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줄 수 있다”고 답할 때입니다. 내 통장에 들어있던 돈을 꺼내 집주인에게 잠시 맡겨둔 것뿐인데, 왜 정작 필요할 때는 은행 예금처럼 바로 찾을 수 없는 걸까요?

이는 전세 제도가 겉으로는 ‘부동산 임대차’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이차·무기한 사적 대출’이라는 독특한 경제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돈임에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적 이유 세 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1. 자산의 고착화: 내 돈은 이미 ‘벽돌과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임대인은 여러분에게 받은 보증금을 현금 형태로 금고에 보관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돈은 이미 해당 주택을 매수할 때 치른 잔금으로 사용되었거나, 이전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데 쓰였습니다.

구조적 결함: 즉, 여러분의 현금 자산은 임대인의 손을 떠나 ‘부동산’이라는 실물 자산에 묶여버린 상태가 됩니다.

부동산은 유동성이 매우 낮은 자산이기 때문에, 집을 팔거나 새로운 대출을 받지 않는 한 임대인에게는 당장 내줄 현금이 없습니다. 결국 “다음 세입자를 구해야 돈을 준다”는 말은, “내 자산이 다시 현금화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유동성 부족의 고백인 셈입니다.

2. 보증금은 ‘무담보 사채’와 같은 성격을 갖습니다

은행에 예금할 때는 국가가 예금자보호법을 통해 일정 금액을 보장합니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은 국가나 금융기관이 지급을 보증하는 상품이 아닙니다. 법적으로 전세금 반환은 임대인이라는 ‘개인의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적 계약입니다.

비록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출 수 있지만, 이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순위에 따라 돈을 받을 권리를 주는 것이지, 임대인이 돈이 없는데 국가가 대신 갚아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임대인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 내 돈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갖게 됩니다. 관련 법적 보호 체계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3. 법적 반환 의무와 ‘현실적 집행’ 사이의 시간차

법적으로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면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와 임차인의 주택 반환 의무는 동시에 일어납니다(동시이행관계). 이론적으로는 만기일에 바로 돈을 받아야 하지만, 임대인이 “돈이 없다”고 버티면 임차인이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는 소송뿐입니다.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걸고 판결을 받아 집을 경매에 넘겨 돈을 회수하기까지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당장 이사 갈 집의 잔금을 치러야 하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이 ‘시간차’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임대인의 “다음 세입자 구하면 줄게”라는 요구에 비자발적으로 협력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분쟁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식 채널은 금융감독원이나 지역별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가 있습니다.

결국 내 돈을 지키는 것은 ‘계약 전의 방어’입니다

전세보증금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돈’이 된 이유는, 제도 자체가 임대인의 선의나 다음 세입자의 등장이라는 불확실한 미래 가치에 의존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계약을 맺기 전부터 이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반드시 가입하고, 등기부등본상의 근저당권이 집값의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합니다. 내 돈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임대인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시스템적 안전장치를 미리 구축해 두는 것입니다.